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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에 실린 스페이스 워 Space War 에 대한 기사

1961년 여름 MIT의 스티브 '슬러그' 러셀과 그의 몇몇 친구들은 대학 내에 설치되어 있던 PDP-1 컴퓨터의 성능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데모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 당시 컴퓨터들은 보통 천공카드나 종이테이프를 통해 입출력을 했지만, PDP-1은 그와 달리 모니터를 갖춘 특이한 장비였던 것이다.

스페이스워의 탄생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데 같이했던 J.M. 그랫츠가 1981년에 크리에이티브 컴퓨팅메거진에 기고한 글을 보면 데모에는 다음 세 가지의 조건이 있었다고 한다.


_ 이 컴퓨터가 지닌 모든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며, 또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해야 한다.
- 각각의 데모는 일관된 틀을 유지하면서도 다르게 보여야 하고 흥미를 유발해야 한다.

- 일반인들도 관심을 보일 수 있도록 재미있어야 하고, 게임의 형태를 갖추도록 한다.


E.E 스미스의 소설 렌즈맨과 스카이락에 영향을 받은 스페이스 워는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컴퓨터 게임이라 할 수 있다. 히킹보덤의 Tennis for Two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구성된 전자회로였다면 스페이스 워는 본격적인 컴퓨터를 이용한 게임으로 지금까지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게임들의 기본 모델이 될 만한 것이었다. 1962년 스페이스워 프로그램은 PDP-1에 설치되었고, 이후 오랫동안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 퍼져나가며 전자 게임의 역사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스페이스워로부터 영향을 받았던 인물들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타리의 창립자 놀란 부쉬넬이나 SSI의 창립자 조엘 빌링스도 포함되어 있다.



스페이스워에는 두 대의 B급 영화 스타일의 로켓이 등장한다. 이 두 로켓은 웨지와 니들이라 불렸는데, 이는 각 로켓이 뚱뚱한 시가 모양과 기다란 튜브 모양이어 붙어진 이름이었다. 이 두 로켓이 컴퓨터가 창조 해낸 공간에서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플레이어가 스위치를 조작해 로켓의 방향을 정하면 이 로켓은 무중력 공간에서 움직임을 표현한다. 이런 움직임은 스페이스워로부터 거의 20년이 지난 뒤에 발표되었던 아타리의 아스테로이즈에서도 볼 수 있다.


각각의 로켓은 자기차례에 31발의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데, 발사된 어뢰는 작은 점으로 표시되어 상대 로켓을 향해 날아간다. 이 작은 점이 상대 로켓에 명중되면 폭발과 함께 상대 로켓은 화면에서 사라지게 된다. 물론 이 폭발에는 요즘 같은 시각적은 효과나 스테레오 사운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폭발한 로켓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파편을 표시하기 위해 어지럽게 작은 점들이 표현되어지는 정도이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1962년에 이미 현실성과 게임플레이 사이의 균형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는 점이다. 러셀이 프로그래밍한 스페이스워의 원래 배경은 랜덤한 점들의 배열이었지만, 이에 만족하지 못한 피터 샘슨은 실제 은하계를 본뜬 배경을 프로그램 해버렸고, 그들은 이것을 농담 삼아 '아주 비싼 천문관'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학생은 중력 옵션을 넣어버렸고, 또 다른 프로그래머는 로켓이 시스템 영력을 벗어날 때를 대비한 경고 시스템과 함께 공간이동을 통한 탈출 옵션을 집어넣었다. 공간 이동의 한 가지 문제점은 이동을 한 로켓이 어디로 다시 나타나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만약 로켓이 태양 근처에라도 나타나면 로켓은 결국 태양의 중력에 빨려 들어 타버리는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 러셀은 어뢰의 움직임에 불확실성을 부여하려 했지만, 이 시도는 플레이어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이 원하는 것은 그들이 발사한 어뢰가 의도한대로 정확하게 날아가길 원했던 것이다. 러셀이 의도했던 불확실성은 플레이어 각자가 지닌 능력 이상의 요소를 게임 플레이에 개입시키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스페이스워는 전자 게임 역사에 있어 거대한 이정표로 남게 되었다. 스페이스워는 후대의 수많은 전자 게임 개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컴퓨터 한대의 가격이 120,000달러라는 컴퓨터 게임 산업이 있을 수 없는 환경에서 게임 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때 그런 것처럼 스페이스워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의 원석으로 남아있다.


" 60년대 후반이었나, 70년대 초반이었던가, 스탠포드 대학 학생회관을 어슬렁거리던 나에게 특이한 기계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할 것 같은 물건은 바로 핀볼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자 게임이었다. 겉보기에는 TV에 단추 몇 개를 더한 것 같은 모습이었던 그 게임의 조상은 바로 스페이스워였다. 원래의 레버대신에 버튼으로 바뀌고 여러 기능 역시 개선이 이루어져 있었다. 예를 들어 태양을 나타내거나 없애는 옵션이나, 중력에 관한 옵션등이 추가되어 있었다.

친구 스티븐과 함께 플레이를 시작했던 여름 방학 초기에는 아무런 방해 없이 둘이서 플레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기계 주변에만 무려 6겹의 구경꾼들이 생겼고, 여러 대의 모니터를 추가로 연결해 사람들이 우리가 플레이 하는 게임을 구경하곤 했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유타 대학에서 놀란 부쉬넬이 스페이스워를 처음 보고 알아차린 것을 나 역시 스페이스워를 처음 봤을 때 느꼈었다면 하고 말이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신호였던 것이다."
- 러셀 드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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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프로그래밍전문가 기출문제를 풀던중 나왔던 Space War에 대한 문제,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Space War탄생 40주년을 기념에서 외국의 어느 잡지에서 나왔던 기사를 한국에서 번역해서 어떤 잡지에서 글을 올렸더군요. (어느 잡지인진 두개다 모릅니다 -_-;;)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들었던건,, 저 Space War의 모니터는 벡터 방식의 모니터일듯, 이란 생각과(얼마전 시험본 컴퓨터그래픽스 라는 과목에서 봤던 내용이예요, 음헬헬) 그당시 컴퓨터 메모리 용량으로 실제 은하를 본뜬 배경을 프로그램할 수 있다는게 놀라웠어요, -_-; 다른 글에서 읽은 바로는 배경이 시간에 따라서 변한다는군요..; 현재 하늘에 맞도록,, MIT가 부럽고, 저도 저런 프로그램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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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y.blogin.com/reipin BlogIcon reipin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이라는 책을 보면 그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있어요. 오랜만에 다시 보니 재미있네요. 아마 고등학교때? 'space war' 이야기를 처음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던지..ㅋㅋ 2006.05.03 23:09
  • 프로필사진 Favicon of http://mastojun.net BlogIcon Mastojun 해커, 그 광기와 비밀의 기록 이라는 책, 우리학교 도서관엔 없군요 ㅠㅠ,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D 2006.05.04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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